대한의사협회(의협)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61.9%가 노인외래정액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제도 적용 대상인 65세 이상에서는 진료비 인상에 따른 본인부담 증가가 부담된다는 응답이 68.8%에 달했다. 의협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25년째 1만5000원에 머문 정액 기준을 포함한 구조 개선을 정부와 국회에 촉구했다.

이번 조사는 의협이 전문 여론조사기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9월 11일부터 18일까지 8일 동안 실시했다.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100명이 응답했고, 결과는 의협 「노인외래정액제 및 의료급여 관련 특별위원회」 최운창 위원장(전라남도의사회장)이 발표했다.

대한의사협회 https://www.kma.org

국민은 노인 본인부담 증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응답자 절반 이상이 고령층의 진료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을 우려했다. 의협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53.5%가 진료비 인상으로 늘어나는 노인 본인부담금을 '부담스럽다'고 평가했다. 제도의 직접 대상인 65세 이상 응답자에서는 이 비율이 68.8%로, 전체보다 15.3%포인트 높았다.

의협은 이를 두고 현행 제도가 고령층이 느끼는 의료비 부담을 제대로 흡수하고 있는지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조사 문항

전체

65세 이상

진료비 인상에 따른 노인 본인부담 증가가 부담스럽다

53.5%

68.8%

본인부담이 늘면 동네의원 이용이 줄어들 것 같다

57.9%

61.3%

의원 이용 감소가 노인 건강에 영향을 줄 것이다

59.0%

66.7%

주말·공휴일·야간 진료 본인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58.0%

71.3%

노인외래정액제 개선이 필요하다

61.9%

64.9%

본인부담 변동성을 줄이는 방향의 개선이 좋다

48.5%

56.7%

※ 자료: 대한의사협회(코리아리서치 조사, 전국 성인 1,100명 대상)

동네의원 외래진료 받는 노인 환자 본인부담 이미지

진료를 줄일 수 있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본인부담금이 오르면 동네의원을 찾는 횟수가 줄 것 같다는 답은 전체의 57.9%, 65세 이상의 61.3%를 차지했다. 의원 방문이 줄면 노인 건강에도 영향이 갈 것이라고 본 비율은 전체 59.0%, 65세 이상 66.7%로 집계됐다.

다만 이 수치는 실제로 의료 이용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잰 결과는 아니다. 본인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국민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물은 인식조사라는 점을 의협도 전제로 밝혔다.

야간·휴일 진료 문항에서도 고령층 응답이 두드러졌다. 주말·공휴일·야간 진료 때 늘어나는 본인부담을 낮춰 고령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에 전체 58.0%가 동의했고, 65세 이상에서는 그 비율이 71.3%로 올라갔다. 의협은 노인 의료정책을 평일 낮 진료비만 놓고 설계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진료가 필요한 시간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노인외래정액제는 어떤 구조이고, 무엇이 문제인가?

노인외래정액제는 65세 이상 환자가 의원급 외래진료를 받을 때 총진료비가 일정 금액 이하이면 본인부담을 정액으로 묶어 주는 제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의원급 총진료비 1만5000원 이하에는 1500원 정액이, 이를 넘으면 진료비 구간별로 10~30%의 정률 부담이 적용되고 있다.

의원급 총진료비

65세 이상 본인부담

1만5000원 이하

1500원(정액)

1만5000원 초과~2만원 이하

10%

2만원 초과~2만5000원 이하

20%

2만5000원 초과

30%

※ 자료: 보건복지부(2018년 1월 시행 기준)

복지로 '노인 외래진료비 본인부담 개선' 안내 https://www.bokjiro.go.kr/ssis-tbu/cms/pc/news/news/6576410.html

고령층의 진료비 걱정을 덜고 의료 접근성을 지키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진료비가 기준선을 넘는 순간 본인부담이 크게 뛰는 구조여서 한계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의협에 따르면 정액 적용 기준금액은 2001년 1만5000원으로 조정된 뒤 25년 동안 그대로다. 그사이 진료비가 오르면서 정액 구간을 벗어나 20% 이상을 내는 환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 의협의 설명이다.

같은 환자라도 진료비가 어느 구간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내는 돈이 크게 달라지다 보니, 진료실과 접수창구에서는 차액을 설명하는 일과 민원이 되풀이되고 있다. 의협은 기준금액이 지금처럼 묶여 있으면 진료비 상승과 함께 본인부담이 갑자기 늘어나는 환자가 계속 많아질 수 있다며, 제도 손질을 더 미루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의협이 내놓은 개선 방향은?

의협은 본인부담금을 일괄적으로 내리는 방식에는 선을 그었다. 대신 진료비 구간과 본인부담 구조를 다시 짜서 구간 경계마다 부담이 급증하는 이른바 '절벽'을 완화하고,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함께 지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번 조사에서도 본인부담의 급격한 변동을 줄이는 쪽으로 제도를 고치는 편이 낫다는 응답이 전체 48.5%, 65세 이상 56.7%로 나타났다. 의협은 국민이 원하는 개선이 단순한 비용 경감에 그치지 않는다고 봤다. 노인 환자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 주면서, 진료비 수준에 따라 벌어지는 본인부담 격차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최운창 위원장은 응답 결과와 관련해 "의료비 부담 때문에 필요한 진료를 주저할 가능성을 국민 스스로 상당한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제도 설계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신호"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지금 구조가 유지되면 국민이 체감하는 부담과 진료 현장의 혼선이 함께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의료현장 사례, 국민 인식, 건강보험 재정 여건을 종합 검토하고 산하단체 의견을 충분히 모아 구체적인 개선안과 근거자료를 정부와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제도의 합리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명운동 등 제도 개선 움직임은 어디까지 왔나?

의협이 8월 13일부터 한 달에 걸쳐 벌인 대국민 서명운동에는 모두 4만9196명이 참여했다. 서명은 의원급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현행 제도의 현황과 개선이 필요한 이유를 직접 설명하는 방식으로 받았다.

최 위원장은 서명 결과를 두고 "5만 명에 육박하는 국민이 노인외래정액제의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고 목소리를 보태주신 것"이라며 제도 개선을 향한 국민적 관심이 결코 작지 않다고 평가했다.

의협은 시·도의사회와 지역 노인회 사이의 협의 채널도 가동해 왔다. 지역사회 목소리를 듣고 공감대를 넓히는 한편, 함께 대응할 방안을 모색했다는 설명이다. 앞으로는 마련한 개선안과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보건복지부와 국회 등 관계기관에 개선 필요성을 설명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이 나오도록 협의를 이어 갈 방침이다.

최 위원장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면서도 의료현장의 혼란을 해소하고, 고령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에 합리적인 구조 개선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조사가 "노인외래정액제를 둘러싼 국민의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지속가능하고 합리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메디컬포커스 편집부 flowood.k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