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포퓰리즘 의료제도 해법은 없나?
한나연합의원, 이동욱 원장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어떤 사람은 좋은 경치를 보는 관광(sightseeing)이 좋아서 여행을 하는데,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다른 지역의 문화와 사고방식 그리고 생활양식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어서다.
그래서 이번에 미국을 여행하면서도 미국사람들의 문화와 그런 문화를 형성하게 된 배경, 우리나라와의 차이점 등을 흥미있게 보았다.
미국은 분명 사회시스템적으로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회이고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남을 배려하고 특히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우리보다 훨씬 몸에 배인 문화를 나타내고 있었다. 미국이 단시간에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초강대국이 된 저력이 바로 그런 합리성을 추구하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문화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문화와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불평보다는 감사를 생활화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팁문화, 어린이, 여자, 장애인, 노인을 존중하고 보살피는 문화가 미국 사회의 주요한 특징이다. 미국사람들은 ‘떼법’보다는 민주주의가 생활에 밴 모습들을 보여 준다.
흥미로운 것은 세계 각국을 여행해보면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서울, 도쿄, 북경, 런던 등의 물가는 터무니없이 차이나는 품목은 거의 없고 대충 비슷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원인은 사람들은 합리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글로벌시대여서 2-3배차이가 나면 그런 차이와 불합리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간 무역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가 보면 물가가 우리나라와 터무니없이 차이가 나는 것은 거의 없고 우리나라와 대충 비슷하다. 의류, 식품, 유류비, 각종 공산품, 부동산 등에서 미국이 싼 것도 의외로 많다. 하지만 모두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글로벌시대에 2-3배도 아니고 유독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의사의 진찰비와 수술비이다.
어찌 무역이 활발한 21세기 글로벌시대에 10배의 차이가 나는 품목이 있을 수 있을까?
10배는 분명 터무니없는 차이인데 이 터무니없는 차이가 미국이 비상식적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이 비상식적이기 때문일까?
이런 비상식적인 차이를 미국이라는 나라가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사회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미국은 그렇게 비합리적인 사회가 아니다.
의사의 진료행위의 경제적 가치가 식사 한 끼 수준인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아니면 미국처럼 10끼 식사정도의 수준이 타당한 것일까?
한국에서는 웬만한 개복수술을 하면 수술수가(수술에 참가한 의사, 간호사 4명 인건비+재료대)가 30만원 선이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의 생명을 위해 긴장감을 집중해서 진이 빠지게 수술을 하는 의사 몇 사람의 수술가치가 고작 30만원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힘이 빠진다 (의사, 간호사의 수술근로의 대가는 수술수가에만 포함된 것이 맞고 퇴원시 내게 되는 나머지 비용부분은 병원이 이윤추구를 할 수 없게 되어 있고 재료대, 약값 등 전부 100/100 실비개념의 비용인 것이다).
집에 하수배관수리 하나만 해도 인건비만 15만원 이상인데 최소 두 세 사람 이상의 의사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정신을 집중해서 사람의 생명을 두고 하는 수술수가가 30만원 선(일인당 10-15만원이하)이니 매우 비이성적인 것이다.
수술이 잘못되어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5억에서 10억을 배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집수리가 잘못되면 100만원 배상도 과하다고 생각한다.
의사에게 요구하는 이런 의무수준에 비추어 볼 때 과연 지불하는 수술수가가 사회적으로 합리적 수준의 보상인가?
한국의 복지부 공무원들은 말한다. 한국의 의료제도는 세계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제도라고 말한다. 정말 그 말이 사실이라면 초강대국 미국이 왜 한국의 의료제도를 따라하지 못 할까?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속을 들여다보니 한국의 의료제도는 의사착취라는 현대판 노예제도에 기반한 것이므로 안 하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가격의 한국의 의료제도에서 의사들의 희망상실, 의욕상실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한국에서 의사가 처한 상황은 과거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에 무관심했던 한국사회에서 착취당하면서도 말도 못하고 살던 불쌍한 며느리에 비유하면 이해하기가 참 쉽다. 새벽4시부터 일어나서 밤12시까지 가족식사 준비, 설거지, 빨래, 육아, 청소, 시댁 식구 봉양까지 뼈가 어스러지게 일하고도 말 한마디 못하고 욕만 먹던 한국의 며느리 말이다.
아내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희생하는 바람에 손가락하나 까닥 안 하고 양말 벗어던지고 물 가져 오라, 밥 가져 오라 아내에게 명령하고는 담뱃대에 유희까지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 남편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그 남편이 우리 가정은 아내의 희생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자랑할 만한 가정이라고 세상에 떠든다고 생각해보자. 아내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 입장에선 그만큼 편하고 우수한 제도가 없겠지만 사실상 매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성적인 사람들이라면 그 아내의 입장을 생각하고 아내의 최소한의 동의를 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 경우 그 착취대상은 그 가정의 구성원이 아니라 허울 좋은 공익이라는 ‘포퓰리즘’에 강요당하는 노예일 뿐이다.
주변의 많은 의사들이 대한민국에서 의사로서 살아가는 것이 매우 불행하게 느낀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매우 마음이 아프다. 그걸 남편으로 비유되는 복지부공무원이 우리나라만큼 온 국민이 편하고 비용 적게 드는 의료제도가 없다고 세계에 널리 선전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가? 거기다가 한국의 의사를 더욱 부려먹기 위해 매우 부도덕하다고 끊임없이 매도까지 한다.
남편이 아내에게 온 가족이 행복한데 너는 왜 공익을 위해 더 이상 희생을 못 하겠다는 말이냐고 공격한다면 그게 타당한 요구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누군가 희생하면 분명 나머지 사람들은 편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희생하는 사람이 그 시스템에 동의하지 않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한 나머지 사람들이 그 제도는 좋은 제도라고 말해서는 절대 안 되고 지속가능성 또한 없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회라면 반드시 희생하는 사람도 받아들일만한 타당한 방안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한국의 의사들이 노예가 아닌 이상 한국의사 스스로의 현 의료제도에 대한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공익이라는 이유로 OECD 최저의 한 끼 식사정도의 진찰료, 하수배관수리비정도의 수술료를 지속적으로 강요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복지부 공무원들도 알아야 한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10배의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가격차이의 원인과 이것이 최소한 1.5배 이하의 차이로 합리적으로 되기 위한 해법에 대해 고민했다. 원인은 의료라는 재화가 폐쇄적인 구조이기 때문이고 이 문제를 풀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10배 이상 차이라는 이런 기막힌 현상이 풀리기 위해서는 대내적으로 노예해방혁명이 일어나거나 대외적으로 의료의 세계화 즉 의사무역이 일어나는 것 밖에 없다.
노예해방혁명이 쉬운 일이 아니듯이 의사무역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의협회장은 누가 되든지 의사무역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우수한 의료인력과 수준에 대해 외국에 이해와 설명을 구하고 면허상호 인정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미국과 면허상호인정이 되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미국이 안 되면 호주, 일본 같은 나라와라도 면허상호인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면 한국의사의 대탈출현상이 생길 것이다. 무역이 생기면 국민들도 깨닫게 되고 비이성적인 OECD평균 1/5의 의료수가는 급속도로 적정한 방향으로 개선이 될 것이다.
이 사회의 0.1%의 수재들이 의사가 된 이후 희망을 완전히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그만 보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나는 이런 기형적인 제도 하에서는 차라리 한국의사들의 대탈출이 일어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처럼 비이성적인 착취가 지속되고 의사들의 불행감이 높아지면 의사혁명 내지 대탈출의 극단적 현상은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나타나게 될 것임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값싸고 질 좋은 제도? 세상에 터무니없이 싸고 질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비이성적인 의사 착취제도에 기반한 현 한국의료제도의 문제점과 지속가능성이 없음에 대해 국민들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지금이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