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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대 화두 ‘나는 무엇인가?’

유성철 의학전문기자 | 칼럼·인터뷰 |
시크릿여성의원, 류명철 원장 나는 무엇인가? 인간이 의식의 세계를 알게 되면서 끊임없는 화두로써 인간 내면의 물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 수많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답을 얻은 사람은 주위에 없어 보인다. 왜일까? 수많은 수행자들이 신에게서 답을 얻고자 노력해보고, 불가에서는 참선수행으로 그것에 대한 정답을 얻으려했지만 우리에게 딱히 와 닿지는 않았다. 물론 그들 내면에서는 황홀과 신에 대한 영적체험으로 세속의 우리와는 다른 깨닮음을 가졌을지는 모른다. 신성과의 영적연결을 어떻게 계량화해서 보여주고 설명해 줄 수가 있겠는가? 정신세계의 한계라고 할까? 알음알이의 세계와 명상의 세계가 다르다는 건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단순히 지식의 나열로써 영혼을 설명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보통의 수행자는 알음알이와 명상으로 신성의 세계로 나아가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불립문자가 알음알이와 명상의 세계를 이분화해서 선을 만들어낸 것을 보면 인간의 정신세계도 결국 이원화돼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명상’, ‘참선’ 이란 것이 또한 알음알이를 벗어날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요즘 유행하는 알아차림이란 것도 결국 알음알이를 못 벗어난다. 존재를 알아차리는 행위자체도 결국은 알음알이일 뿐이다. 언어로 존재하는 모든 개념은 결국 알음알이의 세계에서 한발작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요가수행자는 몸을 수행의 도구로 삼는다. 비틀고, 거꾸로 서고, 굶주리고 고도의 절제를 요구한다. 결국 몸이 견뎌내질 못한다. 부처도 고행이 수행의 본질이 아니란 걸 깨닫고 나서 비로소 새로운 영적세계로 나아갔다. 이걸 보고 돈오돈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 또한 오류라 할 것이다. 육체의 수행에도 외적수행과 내적수행이 있다. 외적수행은 요가나 기체조 같은 근골격의 운동이고, 내적수행은 몸속의 기운의 흐름과 정신의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다. 알음알이와 근골격의 수련과 더불어 명상을 통한 영적체험을 바탕으로 내안의 기운의 흐름을 일치시켜나가는 수행이 옳은 수행이라 할 것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게을리 해서는 나를 알아간다는 수행으로서는 부적격이다. 돈수를 주장하면서 ‘막행막식’하는 행위는 절망을 부를 것이고, 기의 흐름을 도외시한 참선은 몸만 망가트릴 것이다. 몸과 마음의 안과 밖이 동시에 닦여질 때 비로소 조금이나마 우주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