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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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똥은 어제 내 삶의 증거물

유성철 의학전문기자 | 칼럼·인터뷰 |
옳 산부인과의원, 김기돈 원장 술을 마신 다음날 변을 보는 일은 아주 고역입니다. 비질비질 힘도 없고 중간에 끊기고 다 해결된 거 같은데 또 나오고 배설 후의 상쾌함도 없습니다. 어제 잡숴주신 곱창에 소주가 내 장을 통과하면서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옵니다. 몸을 보호해야 할 음식이 몸과 이렇게 싸우고 나오니 술 마신 다음날 변은 기백이 다 빠진 패잔병처럼 축 처지는 게 당연하겠지요. 음식은 문화의 산물이고 똥은 자연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어도 자연의 일부인 내 몸을 통과한 똥은 솔직하고 꾸밈이 없이 항상 그 형색을 지킵니다. 홍고추를 먹었다고 빨간 변을 보는 것도 아니고 상추쌈을 먹었다고 파란 변을 보는 것도 아닙니다. 늘 똥은 똥색입니다. 그 변함없는 지속성에 몸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건강한 생활을 한 다음날의 변은 힘차고 활력이 있습니다. 적당한 점도를 유지하고 굵기도 가늘지도 않으며, 냄새 역시 그다지 구리지 않습니다. 잘 삭혀진 홍어회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걸 보면 우리는 입에 좋은 음식 보다는 솔직하고 거짓 없는 아름다운 변을 만드는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내 몸을 살뜰하게 도와주는 음식은 똥도 아름답습니다. 오늘의 내 변은 어제의 내 삶을 정확히 보여주는 증거물입니다. 오늘의 변을 보면서 어제의 삶을 반성해 봅니다. 스트레스 많은 날도 변을 보는 일은 아주 고역입니다. 도대체 내 관략근을 통과 할 듯 말듯 약을 올리고 숨이 차게 힘을 써봐야 손가락 한마디 정도 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어제 나를 힘들게 한 어떤 인간 때문 인거 같습니다. 초원의 얼룩말이 사자를 만나면 맞서 싸워서 장렬하게 생을 마감하거나 도망가서 평화롭게 다시 풀을 뜯어 먹습니다. 하지만 인간세상은 맞서 싸울 수도 없고 도망 갈수도 없는 스트레스 지속상황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도 대화가 안 통하는 남편을 둔 아내도 까칠한 며느리를 둔 시어머니도 독한 말을 내뱉는 직장상사를 둔 회사원도 저 역시도. 맞서 싸우지도 도망가 버리지도 못하는 운명입니다. 그래서 내 장이, 내 마음이, 내 방광이 내 피부가 형편없어 집니다. 인간사가 이럴진대 스트레스 없이 살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바꿀 수 있습니다. 걱정하는 습관도 없애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없애고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회한도 없애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없애고, 없애야 할 것들이 천지입니다. 내 장의 연동과 분절의 규칙성이 상실된 오늘 어제 나는 누구를 미워했고 누구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는지 곱씹어 보고 모두를 용서 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그리고 또 누구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